Live from Abbey Road_EBS 음악다큐
헐... 내가 좋아하는 자미로콰이가 나온다. DVD를 구입해야겠다.
장기하와 얼굴들 EBS SPACE 공감 공연실황中 '싸구려 커피'
얘네 영상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 스따일이야~!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보다보면 가끔 '이런 음악을 하는 애들도 있구나 '하는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얘네는 좀 의외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중파 스탈이 아니잖아~
어쨋거나 이비에스의 선정 취향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러한 독특하고 음악성 있는(사실 아직 몇 곡 들어보질 않아서 음악성이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거나 확실한 컨셉이 있는 밴드이다.) 인디밴드들이 홍대앞 뿐만 아니라 전국에도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키치하면서도 왠지 비싸(?)보이는 설정이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랩인지 정신줄 놓은 이의 중얼거림인지 모를 중간 부분의 '지껄여댐'은 손동작과 함께 왁자한 저잣거리에서 판소리를 하는 듯 보여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그들의 '얼굴들'을 보면 뭔가 차분하면서도 격조(?)있는 노래가 나올 것 같은데, 막상 들으면 "이건 뭠미?" 뜨아~해지는 반응을 보이다가 곧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내심 놀랄 것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보다보면 가끔 '이런 음악을 하는 애들도 있구나 '하는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얘네는 좀 의외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중파 스탈이 아니잖아~
어쨋거나 이비에스의 선정 취향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러한 독특하고 음악성 있는(사실 아직 몇 곡 들어보질 않아서 음악성이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거나 확실한 컨셉이 있는 밴드이다.) 인디밴드들이 홍대앞 뿐만 아니라 전국에도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키치하면서도 왠지 비싸(?)보이는 설정이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랩인지 정신줄 놓은 이의 중얼거림인지 모를 중간 부분의 '지껄여댐'은 손동작과 함께 왁자한 저잣거리에서 판소리를 하는 듯 보여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그들의 '얼굴들'을 보면 뭔가 차분하면서도 격조(?)있는 노래가 나올 것 같은데, 막상 들으면 "이건 뭠미?" 뜨아~해지는 반응을 보이다가 곧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내심 놀랄 것이다.
릴릴 LiilLiil_사라져가는 풍경展
Voyage to Vanishing Landscape
릴릴展 / LiilLiil / animation.video
2008_0730 ▶ 2008_0812

릴릴 LiilLiil_사라져가는 풍경_Voyage to Vanishing Landscape_시네마 4D 애니메이션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릴릴 LiilLiil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730_수요일_06:00pm
Voyage to Vanishing Landscape-사라져가는 풍경, Project I2008 서울 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선정 전시
2008 대안공간 풀 작가지원展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 문화재단
관람시간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풀_ALTERNATIVE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릴릴 LiilLiil_사라져가는 풍경_Voyage to Vanishing Landscape_디지털 프린트_2008

릴릴 LiilLiil_나르는 헬기_Transport Helicopter_3D 애니메이션 비디오_2008
점점 녹아가는 극지. 마지막 남은 신대륙. 정복이라는 인간욕망의 새로운 대상이 되어 점점 뜨거워져만 가는 지극히 하얗고 차가운 공간. 이번 전시 『Voyage to Vanishing Landscape-사라져가는 풍경, Project I』에서 나는 국경 없는 영토, 극지에서 벌어지는 각국의 영역 확보를 위한 행위들을 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simulation)과 파노라마 형식의 'Real-3D' 입체영상 설치로 재현한다. 남극여행의 기억은 3개의 애니메이션비디오 연작(Trilogy)으로 재생되고, 녹아가는 빙산, 높아지는 수면, 하얀 빙판대륙에 끊임없이 철제 컨테이너 박스를 날라대는 헬기와 시속 30km의 느린 트랙터 행렬이 이어진다. 조디악 보트를 타고 하는 항해는 더 이상 고요할 수만은 없고 빠르게 움직이는 연필로 그린 파도 물결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이렇게 리노베이션(renovation) 되어가는 남극의 풍경은 인간 행위에 내재되어있는 테리토리즘(territorism)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 역시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공격적인 활동의 한 형태로써만이 이 공간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이 또한 아이러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릴릴 LiilLiil

릴릴 LiilLiil_컨테이너로드_Container Road_3D 애니메이션 비디오_2008
The Antarctic is the cleanest and the most pure place on the earth that I have ever seen. This place has a record of the history of the earth. I would like to talk about the place that is disappearing from the earth (or, in fact, that is being occupied by humans) with my art. ● It might be a distorted space, which is erased from history by authority or a destructed place in which nature is destructed for scientific research and industrial development like ‘ The Antarctic landscape’. ● There is no place where humans cannot reach on the earth and the Antarctic is not an exception from it. The Antarctic has been ‘developed’ with propaganda, called ‘oil-hunt operation and ecological research on the earth’. This area has become a competitive space where many nations build signposts to signify their pride in their scientific technology. No nation has any right to join the Antarctic treaty that guarantees a right for the land without having its own base in the Antarctic. Because of the desire for a land and the deposit of energy in the new continent, Antarctica, construction and scientific research by many nations are extremely active in the area. ● The last continent where humans haven’t reached is gradually melting. This cold and white Antarctica, the last new continent, has become a disputed territory to be conquered by humans. 『Voyage to Vanishing Landscape-Project I』 presents an animation simulation about territorial expansion occurring in the Antarctic, which has no border lines yet. This exhibition used a panoramic ‘Real-3D Simulation’ to show the ‘territorism’ occurring in the Antarctic. My memories of the Antarctic are embodied in this animation trilogy. These animations are composed with melting icebergs, a rising sea level, helicopters that transport metal containers and a procession of tractors that slowly move at the speed of 30 kilometers per hour on the white ice land. My imaginative voyage to the Antarctic with a Zodiac boat is no longer silent and it is rather anxious as my negligently drawn pencil drawings of the waves demonstrate in the animations. The Antarctic landscape, which is getting ‘renovated’ reveals ‘territorism’ that is an internalized human desire for a territory. ● But, I also need to admit that my aggressive action for 『Voyage to Vanishing Landscape-Project I』 was the only way to be close to a part of the Antarctic and ironically it was another example of ‘territorism’ that I created. ■ by LiilLiil
Informations/Exhibition |
2008/08/06 17:39
미디어 아티스트 육태진 타계
미디어 아티스트 육태진님의 타계 소식을 알립니다.
2008년 8월 1일 금요일 오전 2시 50분에 간암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 / Tel. 02-2072-2033
발인: 2008년 8월 3일 일요일 오전 7시
장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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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 육태진 타계

육태진_photo by 김선철_199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故육태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 육태진 / 陸泰鎭 / YOOKTAEJIN
1961 출생
개인전
1991 토탈갤러리. 서울
1996 금호미술관. 서울
1998 금호미술관. 서울
2004 덕원갤러리. 서울
2005 이공갤러리. 대전
단체전
1987 향방 '87 여름전. 윤 갤러리. 서울/ 대전 '87 청년 트리엔날레. 대전시민회관. 대전
사물과의 만남전. 제3갤러리. 서울
1988 서울현대미술제.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현대미술의 場 전. 갤러리 도올. 서울
1990 토탈 백십사. 토탈갤러리. 서울/ Self-So. 대전문화원. 대전
1991 입장들·Positions. 현대화랑. 대전/ 易雲淳9 ♀♂覺+O&CXX전. 현대화랑. 대전
Made in Korea. 소나무/토탈갤러리. 서울/ 6인의 상징적 테마전. 현대화랑. 대전
9인의 상징적 테마전. 현대화랑. 대전
1992 Flower Sculpture. 현대화랑. 대전/ 90년대 미술·진로와 모색전. 청남갤러리. 서울
11월 한국 사진의 수평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젊은 모색 '9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설의 정원. 금호미술관. 서울
'92교감미술제. 뉴코아 이벤트홀. 수원/ 오늘의 삶·오늘의 미술. 금호미술관. 서울
어린이를 위한 눈높이 조형전. 공간화랑. 서울
1993 博覽과 外緣. 홍인갤러리. 대전 / 열린 메시지-인쇄매체전. 미도파갤러리. 서울
영상과 다중매체. 갤러리 비젼. 대전
1994 '94 과학+예술전. KOEX. 서울 / 첨단전자 엔터테인먼트 심포지움. KAIST. 대전
Hidden in Space. 녹색갤러리. 서울
1995 '96 클라인 플라스틱 트리엔날레. 슈투트가르트. 독일
비무장지대전. 인사갤러리. 서울 / 국제 복사 미술제. 갤러리 아트빔. 서울
1997 발광하는 이미지Ⅱ. 에잇플로어 갤러리. 뉴욕 / 97 광주 비엔날레 청년정신전- 과학성. 광주
텍스트로서의 육체. 금호미술관. 서울 / 스코프. 대전 문화원. 대전
호랑이의 눈. 엑시트 아트. 뉴욕 / 미술관의 유머. 성곡미술관. 서울
1998 회화속의 몸. 한림미술관. 대전 / 그림보다 액자. 금호미술관. 서울
매체와 평면. 성곡미술관. 서울 / 이화와 동화. 현대사진박물관. 시카고
북동아시아의 현대미술. 니가타현민회관. 니가타. 일본 / 호랑이의 눈. 일민미술관. 서울
'98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1999 금호 개관 기념 1320전. 금호미술관. 서울 / 전환의 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한국 현대미술-90년대의 전황. 엘렌킴머피 갤러리. 서울
'99도시와 영상. -세기의 빛.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0 가상공간의 샤머니즘. 한원미술관. 서울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산아트홀. 창원
새 천년 324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사각상자보기. 이공갤러리. 대전
대전미디아트 2000.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01 오월정신전-행방불명. 광주시립미술관.광주 /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 롯데백화점.대전
멀티미디어 영상. 대전 엑스포. 대전 / 미술에 담긴 과학. 대전시립미술관.대전
2002 巫dia-한국의 미디어아트와 샤머니즘. 연세대박물관. 서울 / 전시를 보다. 일민미술관. 서울
컨템퍼러리 대전. 롯데화랑. 대전 / SEFORMA 2002. 연세대 삼성관. 서울
작품소장
일민미술관(서울), 금호미술관(서울)
주소: 대전시 중구 대흥동 409-17, 2층, 6스튜디오 (우) 301-010
전화: 042-222-6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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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태진 영상설치展

육태진_부재 Absence_인터랙티브 웹 아트_비디오 프로젝트, 컴퓨터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육태진 온라인 전시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801_월요일_05:00pm
육태진의 '자기애적 자살공격'을 위한 장치들 ● (심적 발달의 출발점에는) 본질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원초적 자아와 본질적으로 자살적인 원시적 희생, 이 양자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관성이 바로 광기의 근본구조이다. - 쟈끄 라깡 ● 육태진은 87년 이후 지금까지 유사한 작가를 찾기 힘든 매우 특이한 작품세계를 보여 온 작가이지만 이러한 작업내용이 면밀히 분석되었던 적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시각기호를 촉각적으로 읽도록 유도하는 80년대 말 - 90년대 초의 작업들('Conceptual Box'로 대표되는 시리즈), 범람하는 광고영상이 주체에게 가하는 인식론적 폭격(동시에 에로틱한 폭력)을 다룬 '광고발칸포' 작업, 그리고 한 없이 걸어가는 남자의 영상을 모니터 자체의 중첩된 운동을 통해 보여준 95년 전후의 '보행자 시리즈', 마지막으로 어두운 터널 속에서 출몰하는 모호한 자신의 영상을 다룬 최근의 '터널 혹은 튜브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그의 작업들이 '대상에 대한 성애적(에로틱) 읽기'와 '자기애적 상황'(나르시시즘)이라는 두가지 핵심적 축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두가지 축이 포스트모던 비평은 물론 최근의 가장 진보된 전자매체예술이론이 향후의 중요한 예술적 면모로 내세우는 것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육태진의 작업이 지니는 독특함과 독창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느끼기' 보다 '읽기'가 예술에 대한 가장 진보적 접근방식으로 통용되던 시기에 -- 이를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포스트모던 기호학주의'(Postmodern Semiotism)가 행패를 부리던 시기 -- 육태진의 초기 작품인 'Conceptual Box' 시리즈는 기호란 읽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올라타는 하나의 장치'여야 하며, 결국 기호란 "나의 생리학적 몸을 경유해서 읽는 것이다"라는 가장 전위적 독해 방식을 예증해 주었다. 그것은 기호에 대한 에로틱한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뒤집어 풀이하면 육신적 에로티시즘이란 '감각'과 '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읽기'와 '기호', '새로운 맥락(context)의 창출의 문제'이다 라는 정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기호를 단지 텍스트 적으로만 읽으려고 하는 쟈끄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입장에 대해 이것이 '형상'(Figure)이라고 하는 신체적 차원을 누락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누락은 기호학과 해체론 모두의 치명적 맹점이라고 비판한 쟝-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의 주장을 상기하자). 이러한 에로티시즘은 육태진이 이후 전개한 영상매체작업에서도 일관된 형식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회전, 왕복운동, 진동하는 튜브와 같은 주변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신체적 생리적 몰입을 유발하는, 그럼으로써 영상을 수동적으로 해독되는 기호로서가 아니라 관객에게 생리학적 피이드백을 유발하는 에로틱한 관계설정 속에서 제시한다는 것이다. 육태진 작업의 두번째 축인 '자기애적 상황'은 작품의 정의를 '작가의 내적 상상을 표현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지닌 정신병리를 재연하는 장치'로 변환시킨다. 그러한 '정신병리적 위상'은 창조주로서의 '작가적 위상'과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 양자가 하나의 단일한 연속체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예술가의 전통적 정의에 대해 병리적 증상의 보유자라는 새로운 대체적 정의가 제안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가-병자'(artist-patient), 그리고 '예술-병리'(art-pathology) 정도가 될 것이다. 스타일, 즉 형상의 체계를 발명해 내는 창조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주체의 균열로 인해 발생하는 독특한 '증상'의 보유자로서의 예술가 말이다. 자기애는 육태진의 '가장 독보적이고 창조적인 증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신병리가 작업의 주요 동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그만큼 독특한 작가적 위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96년 개인전에 대한 평문에서 나는 그의 「보행자」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보행자」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역류, 통합된 자기의 전진과 후퇴가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의 이중성과 반복의 맹목성에 의해 모호한 '복수적 複數的 자기'들의 증식과 종말 없는 시간의 감옥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서 '복수적 자기'의 이미지, 그리고 역사적 시간의 흐름이 와해된 '시간의 감옥'(즉 한없이 반복되는 현재)는 바로 자기애적 정신병리의 가장 전형적인 증후이다.

육태진_회전 Rotation_싱글채널 비디오_DVD플레이어_360×320×1000cm, 00:01:54_2004
이제 '에로틱한 읽기'와 '자기애'라는 두 가지 축이 그의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는가를 「숨」(1999)과 「튜브」(2003) 이 두 작품을 통해 기술해 보자. 「숨」에도 물론 자기애의 병리적 특성이 나타나 있지만 그보다는 특히 영상매체의 공간을 관객과의 에로틱하고 생리학적인 교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관객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남자(작가 자신의 영상)을 대하기 전에 일단 아무 영상도 없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얼마간 대기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대기하는 동안 관객은 어둠과 정적에 포위된 채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라이터를 켜는 소리, 헛기침 소리 등을 듣게 된다. 이러한 어둠과 음향은 일종의 몰입의 효과를 지닌다. 그것은 관객을 생리학적으로 그에 동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주체와 외부공간 사이에 '생리학적 근접성과 내밀성'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앞서 말한 '대상과 세계에 대한 에로틱한 읽기'(몸으로 읽기)가 개시되는 순간이다. 어둠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영상 속으로 빼앗기고, 영상은 관객의 주체 내부로 엄습하기 시작한다. 즉 일종의 '탈주체화'의 상황인 것이다. 스크린 속의 남자가 담배연기를 들여마시면 이와 동시에 그의 영상 역시 클로즈업 되고, 그가 숨을 내쉬면 영상은 후퇴해서 멀어져 가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공간 전체의 순간적 수축/팽창 같은 것이다. 여기서 인물은 담배연기 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스크린 내의 가상적 공간과 우리가 서 있는 실제공간 모두)를 호흡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위상은 그러한 수축되고 흡입되는 공간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게 된다. 스크린 속 남자의 이러한 들숨과 날숨은 육태진과 관객,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시키며(즉 '육태진-관객', '가상-실제'), 이 전체를 하나의 '생리학적 맥동(pulse)의 공간'으로 변환시킨다 (이것은 바로 가상공간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이러한 맥동의 공간에서는 주체와 객체(스크린 영상) 사이에 일종의 내밀한 상호교체가 일어난다. 그것은 외부공간과 내 몸 사이의 '스와핑'(swapping, 교환) 같은 것으로서 가상현실이론에서는 그것을 소위 '몰입'(immersion)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스와핑 상태에서 스크린 속 인물의 호흡에 따라 덩달아 흡입되고 배출되는 관객의 주체는 실제적 단단함을 상실한, 모호하기 짝이 없는 '비정형적 주체'(sujet informe/formless subject)의 양상을 띄게 된다 (혹자는 그걸 발전시켜 cybersubject라고 한다). 우리는 육태진의 그 혼령 같은 영상에 귀신 들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육태진의 영상은 한번의 깊은 날숨에 의해 어둠의 저 깊은 소실점을 향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죽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동반자살기계'이다. '육태진-관객'의 영상 (육태진이 관객의 주체 일부를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퇴행'한다. 관객이 처하게 된 이 어둠, 영상이 사라진 이 공간은 '무'가 아니라 '꿈꾸는 공간', '퇴행의 공간'이다 (장-루이 보드리Jean-Louis Baudry의 유명한 영화이론의 기본전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영상이미지를 경유한 나(또는 육태진-관객)의 자살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라, 퇴행이라는 또다른 원초적 삶의 개시가 되는 것이다. 숨의 마지막 종결 부분은 실은 이 영화의 진정한 시작이 되는 셈이다. 라깡을 따르자면 이러한 자기 이마고(imago, 자신의 거울복제영상)의 반복적 파괴는 실은 강렬한 '공격욕'에 기원을 두는데, 이것은 자기애적 정신병리의 핵심을 점유한다 (육태진에 대한 96년의 평에서 나는 그것이 공격욕보다는 질병의 표현이라고 기술했었는데, 이러한 기술은 지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 질병은 바로 '반복적 공격을 증상으로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육태진_튜브 Tube_모니터, DVD플레이어_130×45×55cm, 00:02:24_2003
두번째 작품으로서 「튜브」(2003)를 보자. 알미늄으로 제작된 대형 튜브(소형터널이라고 해도 좋다), 모니터, 그리고 튜브를 진동시키는 모터장치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품 「숨」에서의 생리적이고 맥동적인 공간특성 그리고 자기애적 정신병리, 이 양자 모두를 더욱 심화시킨 작품으로서 이미 98년에 대형 설치로 보여준 바 있는 「터널」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이다. 모니터 영상은 관통되고 있는 터널 내부의 상황을 컴퓨터 동영상으로 재현한다. 기차소리, 알미늄 튜브 자체의 기계적 진동이 증폭되면서 튜브 내부로의 진입속도 역시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는 잠시 완전한 어둠에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튜브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침투는 일종의 '존재하지 않은 곳을 향한 침잠' 즉 앞서 말한 '퇴행'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무의식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일종의 '최면장치'이다 (전자매체문화이론가 마가렛 모스Margaret Morse는 "남자아이는 공간을 어머니의 몸으로 간주한다"는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이론을 빌어, 가상공간 속으로의 비행이나 침투 같은 행위가 퇴행과 공격욕에 연관됨을 시사한 바 있다). 이 퇴행적 터널 속에서 관객이 곧이어 마주치는 것은 희미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며 정면을 바라보는 육태진 자신의 영상이다. 여기서도 역시 「숨」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상과 관객과의 생리학적 스와핑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육태진의 영상은 곧 '육태진-나'라는 이마고의 위상을 갖게 된다. '육태진-나'의 영상은 기차소리와 함께 근접하고 멀어져 가기를 반복하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런 클로즈업과 함께 소멸해 버린다.

육태진_거울 Mirror_LCD모니터(2채널), 경대, 머리카락, 먼지_34×27×34cm, 00:02:28_2002
여기서 '육태진-나'의 이마고가 제시되는 방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반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이란 다름 아닌 그 이마고를 살해하고 파괴하려는 공격욕에 의해 지속된다. 즉 반복은 엄밀히 말하면 '반복적 공격', '반복적 자살'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라깡은 자기애란 것이 성애적 특성과 공격적 특성 양쪽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이마고는 주체를 매혹시키면서도 동시에 주체와의 차이(간극)로 인해 주체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결국 자기애는 동시에 자기에 대한 파괴를 수반하게 된다. 이를 라깡은 '자기애적 자살공격'(agression suicidaire narcissique 또는 agression suicidaire du narcissisme)이라고 부른 바 있다. 육태진이 보여주는 자기애적 상황은 결코 어떤 '종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종결될 수 없음, 종결의 반복적 시작, 종결의 반복으로 인해 얼어붙은 시간, 현실의 단선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으로부터 고립된 퇴행적 자기애의 차원인 것이다. 자신의 이마고는 아무리 공격해도 죽지 않으며 (이미 죽어 있으므로) 육태진의 튜브는 바로 그 이마고를 강박적으로 무한히 죽여 나가는 자동장치(automaton)이다. ■ 김원방
2008년 8월 1일 금요일 오전 2시 50분에 간암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 / Tel. 02-2072-2033
발인: 2008년 8월 3일 일요일 오전 7시
장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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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육태진 타계
2008_0801_금요일_02:50am

육태진_photo by 김선철_199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故육태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1961 출생
개인전
1991 토탈갤러리. 서울
1996 금호미술관. 서울
1998 금호미술관. 서울
2004 덕원갤러리. 서울
2005 이공갤러리. 대전
단체전
1987 향방 '87 여름전. 윤 갤러리. 서울/ 대전 '87 청년 트리엔날레. 대전시민회관. 대전
사물과의 만남전. 제3갤러리. 서울
1988 서울현대미술제.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현대미술의 場 전. 갤러리 도올. 서울
1990 토탈 백십사. 토탈갤러리. 서울/ Self-So. 대전문화원. 대전
1991 입장들·Positions. 현대화랑. 대전/ 易雲淳9 ♀♂覺+O&CXX전. 현대화랑. 대전
Made in Korea. 소나무/토탈갤러리. 서울/ 6인의 상징적 테마전. 현대화랑. 대전
9인의 상징적 테마전. 현대화랑. 대전
1992 Flower Sculpture. 현대화랑. 대전/ 90년대 미술·진로와 모색전. 청남갤러리. 서울
11월 한국 사진의 수평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젊은 모색 '9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설의 정원. 금호미술관. 서울
'92교감미술제. 뉴코아 이벤트홀. 수원/ 오늘의 삶·오늘의 미술. 금호미술관. 서울
어린이를 위한 눈높이 조형전. 공간화랑. 서울
1993 博覽과 外緣. 홍인갤러리. 대전 / 열린 메시지-인쇄매체전. 미도파갤러리. 서울
영상과 다중매체. 갤러리 비젼. 대전
1994 '94 과학+예술전. KOEX. 서울 / 첨단전자 엔터테인먼트 심포지움. KAIST. 대전
Hidden in Space. 녹색갤러리. 서울
1995 '96 클라인 플라스틱 트리엔날레. 슈투트가르트. 독일
비무장지대전. 인사갤러리. 서울 / 국제 복사 미술제. 갤러리 아트빔. 서울
1997 발광하는 이미지Ⅱ. 에잇플로어 갤러리. 뉴욕 / 97 광주 비엔날레 청년정신전- 과학성. 광주
텍스트로서의 육체. 금호미술관. 서울 / 스코프. 대전 문화원. 대전
호랑이의 눈. 엑시트 아트. 뉴욕 / 미술관의 유머. 성곡미술관. 서울
1998 회화속의 몸. 한림미술관. 대전 / 그림보다 액자. 금호미술관. 서울
매체와 평면. 성곡미술관. 서울 / 이화와 동화. 현대사진박물관. 시카고
북동아시아의 현대미술. 니가타현민회관. 니가타. 일본 / 호랑이의 눈. 일민미술관. 서울
'98 한국현대미술 신세대흐름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1999 금호 개관 기념 1320전. 금호미술관. 서울 / 전환의 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한국 현대미술-90년대의 전황. 엘렌킴머피 갤러리. 서울
'99도시와 영상. -세기의 빛.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0 가상공간의 샤머니즘. 한원미술관. 서울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산아트홀. 창원
새 천년 324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사각상자보기. 이공갤러리. 대전
대전미디아트 2000.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01 오월정신전-행방불명. 광주시립미술관.광주 /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 롯데백화점.대전
멀티미디어 영상. 대전 엑스포. 대전 / 미술에 담긴 과학. 대전시립미술관.대전
2002 巫dia-한국의 미디어아트와 샤머니즘. 연세대박물관. 서울 / 전시를 보다. 일민미술관. 서울
컨템퍼러리 대전. 롯데화랑. 대전 / SEFORMA 2002. 연세대 삼성관. 서울
작품소장
일민미술관(서울), 금호미술관(서울)
주소: 대전시 중구 대흥동 409-17, 2층, 6스튜디오 (우) 301-010
전화: 042-222-6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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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적 자살공격을 위한 장치들
육태진 영상설치展
2005_0801 ▶ 2005_0810

육태진_부재 Absence_인터랙티브 웹 아트_비디오 프로젝트, 컴퓨터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육태진 온라인 전시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5_0801_월요일_05:00pm
이공갤러리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183-4번지
Tel. 042_242_2020

육태진_회전 Rotation_싱글채널 비디오_DVD플레이어_360×320×1000cm, 00:01:54_2004
이제 '에로틱한 읽기'와 '자기애'라는 두 가지 축이 그의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는가를 「숨」(1999)과 「튜브」(2003) 이 두 작품을 통해 기술해 보자. 「숨」에도 물론 자기애의 병리적 특성이 나타나 있지만 그보다는 특히 영상매체의 공간을 관객과의 에로틱하고 생리학적인 교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관객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남자(작가 자신의 영상)을 대하기 전에 일단 아무 영상도 없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얼마간 대기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대기하는 동안 관객은 어둠과 정적에 포위된 채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라이터를 켜는 소리, 헛기침 소리 등을 듣게 된다. 이러한 어둠과 음향은 일종의 몰입의 효과를 지닌다. 그것은 관객을 생리학적으로 그에 동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주체와 외부공간 사이에 '생리학적 근접성과 내밀성'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앞서 말한 '대상과 세계에 대한 에로틱한 읽기'(몸으로 읽기)가 개시되는 순간이다. 어둠 속에서 관객은 자신을 영상 속으로 빼앗기고, 영상은 관객의 주체 내부로 엄습하기 시작한다. 즉 일종의 '탈주체화'의 상황인 것이다. 스크린 속의 남자가 담배연기를 들여마시면 이와 동시에 그의 영상 역시 클로즈업 되고, 그가 숨을 내쉬면 영상은 후퇴해서 멀어져 가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공간 전체의 순간적 수축/팽창 같은 것이다. 여기서 인물은 담배연기 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스크린 내의 가상적 공간과 우리가 서 있는 실제공간 모두)를 호흡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위상은 그러한 수축되고 흡입되는 공간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게 된다. 스크린 속 남자의 이러한 들숨과 날숨은 육태진과 관객,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시키며(즉 '육태진-관객', '가상-실제'), 이 전체를 하나의 '생리학적 맥동(pulse)의 공간'으로 변환시킨다 (이것은 바로 가상공간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이러한 맥동의 공간에서는 주체와 객체(스크린 영상) 사이에 일종의 내밀한 상호교체가 일어난다. 그것은 외부공간과 내 몸 사이의 '스와핑'(swapping, 교환) 같은 것으로서 가상현실이론에서는 그것을 소위 '몰입'(immersion)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스와핑 상태에서 스크린 속 인물의 호흡에 따라 덩달아 흡입되고 배출되는 관객의 주체는 실제적 단단함을 상실한, 모호하기 짝이 없는 '비정형적 주체'(sujet informe/formless subject)의 양상을 띄게 된다 (혹자는 그걸 발전시켜 cybersubject라고 한다). 우리는 육태진의 그 혼령 같은 영상에 귀신 들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육태진의 영상은 한번의 깊은 날숨에 의해 어둠의 저 깊은 소실점을 향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도 함께 '죽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동반자살기계'이다. '육태진-관객'의 영상 (육태진이 관객의 주체 일부를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퇴행'한다. 관객이 처하게 된 이 어둠, 영상이 사라진 이 공간은 '무'가 아니라 '꿈꾸는 공간', '퇴행의 공간'이다 (장-루이 보드리Jean-Louis Baudry의 유명한 영화이론의 기본전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영상이미지를 경유한 나(또는 육태진-관객)의 자살은 그 자체로서 끝이 아니라, 퇴행이라는 또다른 원초적 삶의 개시가 되는 것이다. 숨의 마지막 종결 부분은 실은 이 영화의 진정한 시작이 되는 셈이다. 라깡을 따르자면 이러한 자기 이마고(imago, 자신의 거울복제영상)의 반복적 파괴는 실은 강렬한 '공격욕'에 기원을 두는데, 이것은 자기애적 정신병리의 핵심을 점유한다 (육태진에 대한 96년의 평에서 나는 그것이 공격욕보다는 질병의 표현이라고 기술했었는데, 이러한 기술은 지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 질병은 바로 '반복적 공격을 증상으로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육태진_튜브 Tube_모니터, DVD플레이어_130×45×55cm, 00:02:24_2003
두번째 작품으로서 「튜브」(2003)를 보자. 알미늄으로 제작된 대형 튜브(소형터널이라고 해도 좋다), 모니터, 그리고 튜브를 진동시키는 모터장치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작품 「숨」에서의 생리적이고 맥동적인 공간특성 그리고 자기애적 정신병리, 이 양자 모두를 더욱 심화시킨 작품으로서 이미 98년에 대형 설치로 보여준 바 있는 「터널」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이다. 모니터 영상은 관통되고 있는 터널 내부의 상황을 컴퓨터 동영상으로 재현한다. 기차소리, 알미늄 튜브 자체의 기계적 진동이 증폭되면서 튜브 내부로의 진입속도 역시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는 잠시 완전한 어둠에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튜브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침투는 일종의 '존재하지 않은 곳을 향한 침잠' 즉 앞서 말한 '퇴행'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무의식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일종의 '최면장치'이다 (전자매체문화이론가 마가렛 모스Margaret Morse는 "남자아이는 공간을 어머니의 몸으로 간주한다"는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이론을 빌어, 가상공간 속으로의 비행이나 침투 같은 행위가 퇴행과 공격욕에 연관됨을 시사한 바 있다). 이 퇴행적 터널 속에서 관객이 곧이어 마주치는 것은 희미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며 정면을 바라보는 육태진 자신의 영상이다. 여기서도 역시 「숨」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상과 관객과의 생리학적 스와핑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육태진의 영상은 곧 '육태진-나'라는 이마고의 위상을 갖게 된다. '육태진-나'의 영상은 기차소리와 함께 근접하고 멀어져 가기를 반복하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런 클로즈업과 함께 소멸해 버린다.

육태진_거울 Mirror_LCD모니터(2채널), 경대, 머리카락, 먼지_34×27×34cm, 00:02:28_2002
여기서 '육태진-나'의 이마고가 제시되는 방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반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이란 다름 아닌 그 이마고를 살해하고 파괴하려는 공격욕에 의해 지속된다. 즉 반복은 엄밀히 말하면 '반복적 공격', '반복적 자살'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라깡은 자기애란 것이 성애적 특성과 공격적 특성 양쪽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자신의 이마고는 주체를 매혹시키면서도 동시에 주체와의 차이(간극)로 인해 주체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결국 자기애는 동시에 자기에 대한 파괴를 수반하게 된다. 이를 라깡은 '자기애적 자살공격'(agression suicidaire narcissique 또는 agression suicidaire du narcissisme)이라고 부른 바 있다. 육태진이 보여주는 자기애적 상황은 결코 어떤 '종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종결될 수 없음, 종결의 반복적 시작, 종결의 반복으로 인해 얼어붙은 시간, 현실의 단선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으로부터 고립된 퇴행적 자기애의 차원인 것이다. 자신의 이마고는 아무리 공격해도 죽지 않으며 (이미 죽어 있으므로) 육태진의 튜브는 바로 그 이마고를 강박적으로 무한히 죽여 나가는 자동장치(automaton)이다. ■ 김원방
Informations/Artist |
2008/08/06 16:59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전시]'가상현실'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기사입력 2008-07-17 17:58 박소연 muse@asiaeconomy.co.kr
![]() |
| [Christa Sommerer&Laurant Mignonneau, Life Writer] |
![]() |
| [[Carlos Coronas, Its Simply Beautiful Nowhere] |
17일 '제5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기자간담회에서 박일호 이화여대 예술대학 교수는 이 같이 설명했다.
오는 9월12일부터 11월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전환과 확장'이라는 주제 아래 빛·소통·시간이라는 주제로 26개국 69팀이 참가한다.
카를로스 코로나스의 '어디에도 없는'이라는 작품은 네온을 통해 유토피아를 표현한다. 리 후이의 환생은 죽음과 탄생을 맞이하는 침대에 레이저를 설치해 윤회를 시각화했다. 이외에도 남미의 춤을 팝아트로 표현한 클레버슨의 '마크-브루클린' 등 흥미로운 작품이 총 80점 전시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총감독을 맡은 박일호 교수는 미디어 아트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냄으로써 전시의 개념이 넓어진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미술은 공간예술이라고 여겨지지만 미디어 아트는 시간성을 가미함으로써 전통미술과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의 미술에서는 자연광을 바탕으로 보여지는 것들을 표현하는 수동적인 측면이 있지만 미디어 아트에서는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해 빛을 창출해낸다"고 설명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nomy.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nomy.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Informations/Exhibition |
2008/07/17 18:46
관광지 말고 스터디투어 - 커피향 따라 도쿄에 가다
요즘 사람들, 스타벅스 1호점을 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찾고, 와인에 열광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누비며, 현대미술의 최전방을 보겠다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일명 스터디 투어(study tour)라고 부르는 요즘 여행 트렌드.
가장 먼저 들르고 싶었던 곳, 카페 모이
도쿄에 가면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커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한 ‘카페 모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곳에 끌렸다. 꼭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무작정 보냈다. 서툰 일본어로 쓴 편지가 맺어준 모이의 숍 마스터와의 인연. 그는 기꺼이 여행길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그에게서 도쿄의 유명 카페뿐 아니라 후미진 골목의 ‘내공 있는’ 카페들을 소개받았고, 거기서 만나 사귀게 된 현지인 친구들 손에 이끌려 뒷골목의 또 다른 카페에 발을 디뎠다.
www.moicafe.com
커피와 콩의 절묘한 조화, 마메히코
현재 일본에는 천연 식재료를 이용해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유기농 카페들이 늘고 있다. ‘마메히코’ 역시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카페. 마메히코는 일본어로 콩(마메)과 커피(코히)를 조합한 단어다. 두유 카푸치노에는 얇은 크레프 위에 콩을 듬뿍 얹고 달걀을 올려 샐러드와 함께 내는 레토를, 진하게 내린 후카이리 커피에는 단팥과 함께 나오는 롤 케이크를 추천한다. 마메히코에 들른다면 이 환상적인 궁합을 놓치지 마시길.
www.mamehico.com
기획 강민경 | 포토그래퍼 여성중앙 | 여성중앙
* 조인스닷컴 & 팟찌의 모든 콘텐츠(또는 본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문화를 소개하는 카페, 비브멍 디망시
가마쿠라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15년을 맞이하는 ‘비브멍 디망시’. 카페 오픈 당시 프랑스에 흠뻑 빠져 자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 제목으로 카페 이름을 지었던 숍 마스터가 요즘은 브라질에 심취해 있다. 카페에서 브라질 커피와 요리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라질 및 카페 관련 잡화들을 판매하는 ‘도이스’와 음반 가게 ‘클라로’를 연달아 오픈하면서 비브멍 디망시는 이제 가마쿠라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찾아가는 법_먼저 가마쿠라 역 근처 코마치도리를 찾자. 코마치도리에서 첫 번째 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걷는 방향의 오른쪽으로 초록색 간판의 카페 비브멍 디망시가 보인다.

도쿄에 가면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커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한 ‘카페 모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그곳에 끌렸다. 꼭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무작정 보냈다. 서툰 일본어로 쓴 편지가 맺어준 모이의 숍 마스터와의 인연. 그는 기꺼이 여행길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그에게서 도쿄의 유명 카페뿐 아니라 후미진 골목의 ‘내공 있는’ 카페들을 소개받았고, 거기서 만나 사귀게 된 현지인 친구들 손에 이끌려 뒷골목의 또 다른 카페에 발을 디뎠다.
www.moicafe.com

현재 일본에는 천연 식재료를 이용해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유기농 카페들이 늘고 있다. ‘마메히코’ 역시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카페. 마메히코는 일본어로 콩(마메)과 커피(코히)를 조합한 단어다. 두유 카푸치노에는 얇은 크레프 위에 콩을 듬뿍 얹고 달걀을 올려 샐러드와 함께 내는 레토를, 진하게 내린 후카이리 커피에는 단팥과 함께 나오는 롤 케이크를 추천한다. 마메히코에 들른다면 이 환상적인 궁합을 놓치지 마시길.
www.mamehico.com
기획 강민경 | 포토그래퍼 여성중앙 | 여성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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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lisa_(2D painting)
Monalisa, 1991, USA
Joan C. Gratz animator, 1992 Oscar winner to the best animated short.
Animation |
2008/04/22 18:45



